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라 왕조 (문단 편집) === 제국의 발전 === [[파일:Indian_Kanauj_triangle_map_svg.png]] 2대 다르마팔라 황제부터 팔라 왕조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다르마팔라 황제는 고팔라 황제가 물려준 국력으로 본격적인 패권 쟁탈전에 나섰다. 당시 북인도 서쪽에서는 [[프라티하라 왕조]]가 출범했고, 중부의 [[데칸 고원]]에서는 옛 [[찰루키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라슈트라쿠타 왕조]]가 들어섰다. 이 세 나라의 가운데에 끼인 국가가 아유다 왕조가 다스리는 카나우지 왕국이었다. [[784년]], 카나우지 국왕 바즈라유다가 죽고 장남 인드라유다가 즉위했다. 그러자 프라티하라 왕조의 바차라자 황제가 진격해 인드라유다 왕을 격파하고 봉신으로 삼았다. 다르마팔라 황제는 이에 반발하여 [[카나우지]]로 진격했다. 그는 손쉽게 인드라유다 왕을 무찌르고 팔라 왕조로 망명했던 인드라유다 왕의 동생 차크라유다를 왕위에 앉혀 봉신으로 삼았다. 이때 팔라 왕조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카슈미르]] 일대에서 [[네팔]] 일대까지의 모든 소왕국이 팔라 왕국에 복종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를 묵과할 수 없었던 바차라자는 카나우지 인근의 프라야그로 진격해 다르마팔라와 맞붙었고, 이 전투에서 다르마팔라는 황실 양산을 두 개나 빼앗길 만큼 크게 패하여 회군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데칸의 라슈트라쿠타 왕조 황제 두루바가 북상해 돌아가던 프라티하라 군대를 말와 지역에서 기습해 승리하였다. 다르마팔라는 그 틈을 노려 다시 카나우지로 군대를 보냈으나 프라티하라 군대를 이기고 온 라슈트라쿠타 군대에 패하였고, 라슈트라쿠타 왕조는 순식간에 북인도 주요 지역 전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793년]]에 라슈트라쿠타 황제 두루바가 죽어 왕위 계승 내전이 터지면서, 라슈트라쿠타 왕조 군대는 본토로 회군했다. 다르마팔라는 텅 빈 카나우지로 진격하여 일대를 점령했다. 프라티하라 왕조 역시 왕위 계승 내전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팔라 왕조는 북인도 최강국이 되었고, 다르마팔라는 스스로를 북인도의 황제라 선언하였다. 이 시기에 동판 기록을 통해 [[오디샤]] 일대와 [[네팔]]을 장악한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795년]], 프라티하라 왕조의 계승 분쟁을 끝낸 나가부타 2세 황제가 동진하였고, 다르마팔라 황제는 또 다시 패해 카나우지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년 전과 정확히 똑같이,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계승 분쟁을 끝낸 고빈다 3세 황제가 북상했고 프라티하라와 팔라를 모두 무찔렀다. 이 때 프라티하라 왕조와 팔라 왕조는 명목상으로나마 라슈트라쿠타 왕조에 복종 선언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라슈트라쿠타 왕조 군대는 남인도에서의 반란으로 퇴각하였다. 이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공격으로 인해 프라티하라 왕조는 피해를 크게 입었으나 팔라 왕조는 피해가 미미했으므로 [[802년]]에 다섯 번째로 카나우지를 점령하고 북인도의 패권을 잡았으며, 이를 다르마팔라 황제가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긴 전쟁 속에서도 다르마팔라 황제는 내치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불교]]에 많은 후원을 하여, 세계 최초의 [[대학교]]인 날란다 대학에 많은 봉토를 주어 부활시키고 소마푸라, 비크라마실라 등의 대수도원을 지었다. 그는 810년대 초중반까지 재위하였다. 다르마팔라 황제 사후 그의 장남 데바팔라가 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데바팔라 황제가 팔라 왕조의 최전성기였다고 여러 동판 기록이 증언한다. 데바팔라 황제는 즉위 직후 [[아삼]]과 [[오디샤]] 일대를 정벌하여 큰 싸움 한 번 없이 이 지역들을 장악했다. 다르마팔라 황제 시기에 더욱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프라티하라 왕조와 라슈트라쿠타 왕조와의 무력 분쟁에서 승리했으며, 프라티하라 왕조의 일시적 복종을 받아냈다. 그리고 [[라자스탄]]을 넘어 [[인더스 강]] 유역의 후나스 소왕국들[* 후나스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을 일컫는 인도 말이다. 이 시기엔 [[에프탈]]족(백훈족}, 알혼 후나스 등이 소왕국 형태로 인더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었다.]까지 정벌했다. 인더스 강을 넘은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 일대까지 공격해 복종시켰다.[* 기록에 의하면 캄보자를 정벌했다고 하는데, 캄보자는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왕국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때쯤에 벵골 북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어서 어디를 공격한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데바팔라 황제 시대의 날란다 대학 총장이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것으로 확인되어서 아프가니스탄에 팔라 군대가 간 적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데바팔라 황제 시기의 팔라 왕조는 명목상으로나마 북인도를 통일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인도네시아]] [[자바]] 섬까지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데바팔라 황제는 850년대까지 재위하였다. 데바팔라 황제 사후에는 그의 차남 마헨드라팔라가 즉위했다.[* 장남 라즈야팔라는 요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헨드라팔라 황제는 큰 무리수 없이 데바팔라 황제의 치세를 그대로 이어갔다. 북인도의 통제권을 잃지 않았으며 후나스와 오디샤를 재차 정벌했다. 기존의 학설은 마헨드라팔라 황제 시대에 [[프라티하라 왕조]]에게 대패해 복속당했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비슷한 시기의 프라티하라 황제의 이름도 마헨드라팔라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동판 기록이 1990년대에 대거 발견되면서 팔라 왕조의 마헨드라팔라 황제의 존재가 밝혀지며 팔라 왕조는 여전히 독립 상태였음이 밝혀졌다. 마헨드라팔라 황제는 860년대까지 재위하였다. 마헨드라팔라 황제의 후계는 아들이 아닌 그의 동생, 슈라팔라 1세였다. 슈라팔라 황제는 마헨드라팔라 황제의 동복동생으로, 마헨드라팔라 황제 시절엔 황실 외교관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슈라팔라 1세는 길게 재위하지 못 하고 사망했고, 슈라팔라 1세의 아들 고팔라 2세가 즉위했다. 하지만 고팔라 2세가 후손을 남기지 못 하면서 다르마팔라 황제의 직계가 단절되었고, 고팔라 2세 사망 후 다르마팔라 황제의 동생 바카팔라의 손자인 비그라하팔라 1세가 870년대 초반에 제위에 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